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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생활 66

KNACKHEE 2024. 3. 16. 17:52

 

소월길에 화이트스톤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가봐야 하는데, 하고 동동거리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미적거리다 보니 도쿄 본관과 별관을 먼저 다녀오게 됐다. 그리고 올봄, 드디어.
도쿄의 본관처럼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 형태의 건물이었고 지금껏 가본 해외 갤러리 지점 중에 내부가 가장 근사했고 남산과 한 프레임에 두고 볼 수 있는 새 조각상들이 있는 루프탑이 흥겨웠다. 갤러리 입구에 거리 생활을 하는 털뭉치 친구들을 위한 물그릇을 둔 것을 보고는 작게 탄성을 내뱉기도 했다. 다정해!

갤러리에서는 파랑을 테마로 한, 중, 일 작가들의 그룹전이 진행 중이었다. 마음과 맞닿아 있는 파랑에 대한 이야기를 보는 건 언제나 즐겁지. 신비롭고 고요하게 빛나는 심연. 세 작가 중 중국의 리우 커 작가의 작품(1-5)에 크게 마음이 동했다. 일상의 감정 조각을 추상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는 자신의 파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깊고 넓으며 미지의 무한함을 포용하는 신비로운 색인 동시에 순수한 고체감과 다이나믹한 유동성을 지닌 양면적인 색". 튀르키예와 히말라야 산맥을 여행하며 만난 푸른색이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얼마 전 필라테스 선생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손목이 계속 아파요?" "네, 오른쪽만요. 계속 써서 그런가 봐요." "써서 아픈 건 풀면 반드시 괜찮아져요." 그날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요즘 상담 시간에는 꽤 오래 고민 중인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말도 표정도 반응도 거의 없는 상대여서 나는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료해. 그런데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했다. "겉으로는 고요하고 조용한 것처럼 보여도 실은 둘 사이에 엄청난 장력이 작용해 많은 에너지가 쓰이고 있는 상태인 거예요."
그래서 고요하게 펼쳐진 파란색을 바탕으로 여러 형태와 매체 들이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리우 커의 작품들에 눈길이 갔던 것 같다. 그런데 근육처럼, 계속 써서 문제가 생긴 관계도 풀어 주면 나아질 수 있을까. 그냥 애초에 각자가 그런 사람인 건데 풀자고 들면 풀 수 있는 문제이긴 한 걸까. 실은 한쪽이 체념해야 미지근하게나마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지하 전시실에서는 조명을 어떻게 쓴 것인지가 정말 궁금했다. 꼭 작품 뒤에서 빛이 나오고 있는 것처럼 슬몃 푸른빛을 띈 명도 높은 그림자가 겹겹이 늘어져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계산한 것일까. 아니면 파랑의 마법인걸까.

 

66번째 뜨거운 생활의 파편

- 스스로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만들어지는 확신

- 뇌는 뼈라는 동굴에 갇혀 바깥에 귀를 대고 있는 존재로 표현

 

T가 열받는 일을 이야기하고 M이 수첩에 뭘 자꾸 적어서 꼭 상담해주는 것 같아, 했더니 둘이 돌연 상황극에 돌입했다.

T 선생님, 약을 주세요.

M 자, 따라해 보세요, 씨발년.

 

당분간 내 웃음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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