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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240511_내겐 너무 미지의 영역인 조경

KNACKHEE 2024. 5. 18. 11:26

 

'왜 이 전시를 국현미에서?' 이 전시를 마주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큰 물음표였다. 어름하게나마 그 답을 찾기 위해 국현미 웹 사이트의 '미술관 소개' 페이지를 클릭했지만 그나마 얻을 수 있었던 건 여러 분관 중 왜 서울관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정도의 단서였다. 서울관이 복합 문화 시설을 갖춤으로써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의 문화적 가치를 구현' 하고자 한다는 것.
'왜 국현미'인지에 대한 답은 전시 리플릿 세 번째 페이지 두 번째 문단 첫 번째 문장 정도로 갈음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정영선에게 조경은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생동하는 모든 것을 재료 삼는 종합과학예술이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궁금증에 대한 당장의 해갈은 되었다. 생각을 이어가기 시작하면 '무엇이 예술인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단 여기에서 멈추는 걸로.

정영선 조경가가 아산병원 앞에 정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보호자들이 숨을 쉬고 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전시 초입에 인터뷰 영상이 있던 덕분에 조경이 단순히 심미적인 영역이 아니라 그 공간에 존재할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기도 하네, 하는 생각으로 전시 관람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경이 내게는 너무도 미지의 영역이었던 데다 동시 관람객도 많은 탓에 초반의 마음은 빠르게 힘을 잃었다. 그래서 공간을 쓱쓱 지나오고 나니 결국 우리나라에 조경가님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네, 전시 공간 디자인 대단하다, 정도의 감상만 남았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전시를 봤으면 조금 더 전시에 몰입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네.

 

그런데 전시는 꼭 이렇게 늘어놓고 돌게 하는 형태여야만 할까. 영상으로 먼저 전시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공간을 다른 형식으로 보여주는 건 어떨까.

 

 

취미는 입덕 05|이혜인Lee Hyein(b. 1981)

<I Don’t Have a Dog. I Don’t Have a Gun. I’ll Have Your 30 minutes. Sorry!> 길고 얄궂은 제목의 이 작품은 펠트와 나뭇가지로 만든 이혜인 작가의 텐트다. 이는 그의 작업 공간을 상징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그럴 때면 종종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1인용 텐트를 만들어 그 안에서 작업하기 때문이다. 32점의 유화, <The Second Life> 연작 중 텐트를 마주한 벽에 배치된 작품들의 여백이 텐트의 입구 모양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동안 작가의 존재는 외부 환경과 작품 사이에 놓인 렌즈가 된다. 그날의 날씨와 컨디션, 예상치 못한 상황 등의 요소가 작가의 마음에 개입해서 눈앞의 풍경에 심리적, 감각적 왜곡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작품에 담긴 풍경은 실존하는 공적인 장소인 동시에 작가의 안에만 존재하는 사적인 공간이 된다. 그것들은 그때, 그곳에서 직접 시간을 보낸 경험을 통해 우연의 방식으로만 그려낼 수 있다. 작가의 작업 형태를 표현하는 데에 '실외'가 아닌 '야외'라는 단어가 사용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테다.
작가의 안에만 존재하는 것들은 대개 흐릿한 성질을 지닌다. 잃어버린 장소, 시간의 흐름, 소멸을 향해 가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회적 관념이 지닌 힘 같은 것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야외에서 그 사적인 공간에 집중할수록 작가의 세계는 밖으로 확장되고 또렷해진다. 작가가 자발적으로 허용한 외부의 변수들이 예고 없이 들이닥치며 새로운 사고의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환경의 방해를 기꺼이 허락해야만 얻을 수 있는 관계가 있고 이는 전시 공간에 놓인 작품과 그것을 마주한 관람객 사이에서도 다르지 않다.

참고
•국립현대미술관, <가변하는 소장품> 전시 서문(2024)
•제7회 SINAP 선정 작가 작가 노트(2022)
•네이버문화재단 <헬로! 아티스트>, 강승민 칼럼니스트, “수상한 야영객, 이혜인 작가”(2017.02)
•대구미술관, <이혜인 개인전 : 완벽한 날들> 전시 리플릿(2013)
•KÜNSTLERHAUS BETHANIEN, <Sketch Book> 전시 서문(2013)

 

 

뜨생 완.

 

 

작품을 살 여력은 없으니 아쉬운대로 굿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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