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여름이 와버린 토요일의 성북동 투어 본문
간송미술관이 재개관을 한대서 열심히 교육 프로그램까지 티켓팅을 했다. 서화가들의 합작 병풍은 꼭 오늘날의 축전 너낌이라 재미있었다. 서화 스타일로 그린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풍경이라는 강진희의 <화차분별도>(1888)도 인상적이었지. 노수현의 <추협고촌, 가을 협곡의 외로운 마음>(1930)도 좋았고 김영의 <부춘산매화서옥도>는 메모장에 '19세기 졸귀'라고 적어놨는데 뭐가 졸귀인지 적어놓지 않은 데다, 사진 촬영도 불가였고 검색으로도 잘 안 나오는 작품이라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피마준이라는 기법으로 종이에 질감을 낸 작품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전시의 영문 제목은 <ONE, BUT ALL>이었다. 영문 제목을 보고 국문으로 된 <오직 한 사람>을 다시 보니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이 떠올랐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 마음,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한지를 다섯 겹씩 겹쳐 적신 다음에 고랑과도 같은 촉감을 구현해 낸 회화 작품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2층 가득 놓여 있던 그의 지하실이었다. 작가의 메인 작업은 회화지만, 작업이 잘 되지 않을 때면 그는 자신만의 지하실로 가 목판을 파 내려갔다고 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 큐레이터님이 우연히 아직 공개된 적 없던 그의 무수한 목판화를 보게 되면서 이번과 같은 형태의 전시 구성이 가능했다고.
작가의 목판화에는 그가 생의 골목마다 마주하며 골몰했던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의 주변을 이루는 인물과 환경에 따라 목판화에 담기는 주제는 달라지곤 했다. 하지만 주제가 바뀌어도 주변의 것들을 오래 바라보고 유심히 생각하며 성실히 손을 움직여 자신의 작업 세계로 펼쳐내고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병원 면회가 불가했던 팬데믹 시기에 그가 매일같이 그리고 사진을 찍어 입원 중인 아버지에게 보낸 그림을 묶어 낸 책도 인상적이었다. 그 대상이 가족이라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작가는 타인에게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나눌 여백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감상이 어려울 땐 자료 조각 모음 03|이불(b. 1964)
저항의 층위
이불 작가의 작품은 쉽게 젠더의 측면에서 이야기되고는 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유독 그 지점이 오랜 기간 반복해서 조명되는 것은, 어쩌면 작가가 아시안 여성이라는 점에서 기인하는 편견일지 모른다. 작가가 등장했던 1980년대 중반의 미술 세계의 주류가 백인 남성 예술가들의 모더니즘 미술이었던 점도 그러한 해석이 고착화되는 데에 한몫했을 테다. 하지만 이불 작가의 작품은 젠더뿐 아니라 경제 이데올로기, 문화 등 우리 삶을 결정하는 다양한 권력 구조를 추적해 보여준다. 이는 기존의 이야기를 지우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나가려는 시도다.
유토피아의 층위
유토피아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표현하며 자주 사용되는 단어 중 하나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유토피아를 언급하며 그것과 함께 사용하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관심은 '근대에 제안된 실패한 이상주의'에 있다. 작가는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자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실패한 것일수록 아름다운 것들을 품고 있기도 하다. 실현 불가능함을 디폴트로 두고 그럼에도 그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작가의 관심은 그러한 유토피아적 제안들이 발현되었다가 붕괴되는 과정에 있다.
작업의 층위
STPI는 Singapore Tyler Print Institute의 약자로, 21세기형 판화 예술 공방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불 작가는 이곳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여하며 5개 시리즈, 60여 점의 판화 작품을 제작했다. 조각 작품인 <Souterrain>(2012/2016)에서 영감을 받은 <Untitled – SF>(2024)(1-7) 연작은 16겹의 스크린과 호일 프린팅 기법을 활용해 어지럽게 부서진 파편들로 구성된 화면을 만들어 낸다. <Untitled – CC>(2023)(8-9) 시리즈는 그의 <사이보그> 조각의 재해석으로, 인쇄된 구리 가루가 산화하며 자연스러운 시간의 축적을 표현한다.
_
참고
•<Noblesse>, 임해경 에디터, "싱가포르 STPI, 판화와 종이 예술 아지트"(2016.05.30)
•<BAZAAR>, 안동선 에디터, "이불, 충동 그 자체"(2018.10.19)
•<ArtReview>, Wenny Teo, "Lee Bul"(2020.05.08)
•<신세계 매거진>, 김지혜 에디터, "기억을 머금은 몸 - 이불, ‘사이보그’"(2021.01)
•<서울경제>, 조상인 기자, "이불은 어떻게 세계적 작가가 됐나"(2021.03.03)
•<LA STAMPA>, DI ALAIN ELKANN, "Alla gente piace vedermi come asiatica e impegnata ma io penso solo all’arte"(2023.06.18)
•<THE STRAITS TIMES>, Ong Sor Fern, "Lee Bul prints, Singapore Clay Festival, Siong Leng Musical Association’s Jeju connection"(2023.11.02)
•MET 보도자료, "The Met Announces Artists for 2024 Contemporary Commissions: Petrit Halilaj, Lee Bul, and Tong Yang-Tze"
•STPI / PKM / BB&M / Thaddaeus Ropac 웹 사이트
/
여름이었다.
'DAILY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더미 같은 인생 (0) | 2024.06.10 |
---|---|
초여름의 아름다움은 견딜 만 한 것 같기도 (0) | 2024.06.08 |
20240604_업무 시간에 보는 전시가 제일 좋지 (0) | 2024.06.06 |
20240601_파란 이가 생긴 사람 (0) | 2024.06.06 |
강강강강강강강강,의 날들 (0) | 2024.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