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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DAILY LOG (1175)
Write Bossanova,
어제 찬바람 좀 쐬면서 걸었다고 목이 아팠다. 나는 나를 끔찍이도 챙기는 사람이니까 커피 대신 레몬티를 주문했다. 몸서리 쳐질 만큼 상큼했다. 반백수인데 요즘 최고 할 일이 많다. 출근은 안 하지만 취재를 다니고 돈을 벌 계획은 묘연하면서 놀러 다닐 궁리를 하느라 그렇다. 아, 나를 아주 백수로 여기는 엄마가 엄마네 회사 일을 자꾸 주기도 한다. 어찌됐든 영어를 써 보고 밀린 병원들을 가는 것도 일이다. 덕질도 꾸준히 하고 방심하면 찾아오는 무기력의 훅과 분투하는 탓이기도 하다.
* 요즘 힙하지만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은 맞지 않은 한강진 역 부근에서 엘님과 지희 언니를 만나 떡볶이를 먹었다.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내가 치과를 갔다 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선택지들이 대부분 사라졌던 탓이다. 다음 일정으로 디저트가 있었으므로 밥을 볶을지 말지 한참 고민하다 그만뒀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디저트들을 골라들고 자리를 잡았다. 백곰님의 저녁을 위해 엘님이 먼저 떠나시고 나와 지희 언니는 한참 자꾸만 커져서 당황스러운 덕심을 이야기했다. 정말이다. 당황스럽다. 해가 완전히 지고 지희 언니의 핸드폰 케이스를 보러 산책을 나섰다. 웰컴 이태원, 표지가 있는 곳까지 갔으나 케이스 매장을 찾을 수 없었다. 이왕 걸은 거 좀 더, 하고 경리단길까지 갔으나 소득이 없었다. 다시 이..
양말이 두 켤레나 생겼다. 쪽빛 바다를 담은 색의 것과 SY로 스틴트를 다녀온 예쁜이가 /어, 저도 오다 주운 거 있는데!/ 하면서 내민 와인색 줄무늬 양말. 전자는 션님이 제주도에서 공수해 보내주신 건데 정말 취향저격이었다. 사실 양말을 좋아한다는 게 공공연히 알려져 종종 양말 선물을 받곤 하는데 이렇게 /빨리 신고 나가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에 드는 양말을 선물받은 건 처음이었다. 신이 난다. 예쁜이가 준 건 내가 위쪽이 말린 양말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집에서 신게 될 것 같다. 예쁜이는 1년 전 후원자 개발을 위해 나를 만났을 때 내가 그냥 마냥 특이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고, 그래서 SY에 있을 때도 자주 연락을 하게 됐다고 했다..
* 오른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늘 가던 교보가 있고 왼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딱 한 번 가본 교보가 있다. 나무 책장이 있고 노란 조명으로 분위기를 낸 곳에 가고 싶어 왼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에 성급하게(보편적으로 썩 좋은 의미로 쓰이는 단어는 아니지만 나는 이 이상의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생각하지 않고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김혜수 씨를 닮은 언니와 일본에 가기로 해서 여행 책 코너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여러 메시지를 주고받은 후에 우리는 홋카이도에 가기로 했다. 한 퀘스트를 해결하고 얼마 전 산 미니백에 크기에 맞는 파우치를 사기 위해 아이템 코너를 서성이다가 5년여 만에 키도 크고 다부져졌지만 여전히 어린 스물넷의 남자애를 만났다. 알바를 하..
* 토요일 취재가 싫지 않았던 건 어차피 요즘은 정기적인 출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포럼의 주제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브랜드 디자인 분야 셀럽 세 명의 강의가 있었다. 날을 가는 시간이었다. 특히 우아한 형제들의 한명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근거없는 비난과 비판이 아닌 진정성 있는 시선으로 내 결과물을 봐주고 제대로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선배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그런 선배를 만나려면 운도 있어야 하고 이를 제대로 찾으려는 개인의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런 선배의 진심을 볼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 용기가 있으려면 개인의 자존이 바로 서 있어야 하고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올바른 애착이 있어야 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 될 거다. 또 보편적..
* 이 선생님이랑 그냥 눈에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밥이 진짜 맛있었다. 밥알이 하나하나 느껴지는데도 되직해서 떡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짭조름 하기도 해서 소금물로 밥을 짓나? 하고 생각했다가 이내 그럼 짜서 먹을 수가 없지 않나, ... 하고 혼자 수그러들었다. 어제 대학생인 듯한 여자애 둘이 앉아 일본 여행 계획을 짜던 테이블에 앉아 부산 여행 계획을 세웠다. 2박 3일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나는 무척 걱정스러웠다. 몇 번이고 이 선생님에게 /유동적으로 해야 해, 알았지?/ 했다. * 수건을 사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동안은 엄마의 영역이었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의 수건이 탐탁지 않아졌고 나는 엄마에게 수건을 새로 사야겠다고 하면서 내가 주문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딸이 커서 수건..
집에 있으면 늘어지기만 할 걸 아니까 옆 동네 카페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이 센세한테 전화를 해서 이제 뭐해서 먹고살아야 하느냐고 하소연을 했다. 어디냐고 묻기에 송도라도 했더니 일찍 말해줬으면 갈 걸 그랬단다. 이걸 놓치지 않고 내일 와, 내일도 나 여기 있을 거야- 수제 티라미수도 사줄게! 했더니 센세가 물었다. 덥썩. 나는 전화를 끊으며 진로 상담을 준비해 오라고 했다. 소상공인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많은 것들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특히 가족, 같은 거.
대학교에서 만난 쓔와 고등학생 같은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고용은 너무도 불안하고 관계는 녹록지 않다. 이렇듯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이기에 가끔 만나 생활을 나누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기쁘다. 사실 모든 건 순간이다. 순간적인 것이다. * 솔로몬의 위증이 지난 주에 끝났다. 너무 빨리 끝나버려서 당황스러웠다. 동윤 씨의 극중 인물인 지훈이는 참하고 단정하고 실했다. 지훈이는 평생 혼자 안고 죄책감에 시달렸을 수도 있는 일을 공개적으로 꺼내 들고 구원 받았다. 진실되고 지혜롭다. 소우는 어렸고 어려서 잔인했다. 어린 아이들이 맑은 눈으로 상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것처럼. 소우 딴에는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이었을 테지만 지훈이에겐 잔인한 일이었다. 부정하고 부패한 세상이 그의 모든 희망을..
* 따끈따끈한 민간인을 만났다. 다우니 향이 나는 바디로션을 오다 주웠다, 하며 손에 쥐어 줬다. 자기는 바디로션을 한 번도 챙겨 바른 적이 없다며 난감해 하기에 너는 필요를 못 느껴도 네 피부는 필요를 느끼고 있으니 꼭 다 쓰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자리를 잡은 카페는 천장이 높고 통유리창이라 밖이 훤히 보이는데도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연웅이는 의외로 감성적이어서 얘기하다 보면 깜짝깜짝 속으로 놀랄 때가 많다. 사실 그 속 놀람은 장난 섞인 면박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놀려먹는 맛이 있다. * 쿠님의 피치 크러시는 정말 맛있었다. 쿠님은 빨간 커튼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연극은 언제든 시작될 수 있다. 착실히 2년의 조교 생활을 마치고 실업급여와 퇴직급여를 받아 유럽..
무심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욥은 물었다. 당신은 왜 날 찾아온 거냐고.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나를 왜 찾아왔느냐고. 미물을 찾아준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니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그가 내뱉는 절규다. 차라리 당신을 몰랐다면 어설픈 원망도 어설픈 희망도 없었을 것을. 나도 궁금해졌다. 늘 그렇듯 답은 간단명료했다. /나는 하나님이다./
뜨거운 생활 01 일시 : 2017년 1월 22일 장소 : A.FLOAT HOUR 제제 : 황정은 _ J ; 다들 책은 다 읽으셨지요? T ; 그럼. 욕심을 내서 황정은 다른 책들도 읽으려고 했는데 하나도 읽지 못하고, 오로지 이것뿐이야. J ; 잘했어. 나도 아직 신작을 사놓고 읽지 못했어. T ; 아무도 아닌? J ; 어어. T ; 우리 집에도 아무도 아닌, 백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다 쌓여 있어. J ; 책은 있으니까 언젠간 읽겠지 뭐. 나는 이 책을 깊이 읽지는 못했어. 깊이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내가 생각했을 때. 그래서 내가 표면적으로 이해한 걸 얘기해보면- 으하하하- M ; 힘내라- 힘내라- J ; 그러니까, 나는 가족이 삶을 이루는 최초이면서 최소의 공동체라고 생각해. 그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