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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

KNACKHEE 2016. 2. 28. 20:28

 

예배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어쩐지 노랭이와 벙개 약속을 잡고 송도에 내렸다. 갑자기 눈이 내려서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두고 내려 집어 온 우산을 썼다. 그간 내가 지하철의 누군가에게 기부한 우산만 네다섯 개는 될 테니 이정도쯤이야, 라는 마음이었다. 노랭이가 보자고 한 카페는 다행히 역과 가까웠고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순식간에 비현실적으로 쌓이는 눈을 보고 놀랐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다른 차원의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노랭이에게는 평탄하게 아이엘츠에 대한 조언을 듣다가 요즘 뭐 들어?란 말에 솔직히 답했다는 이유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나는 방탄으로 시작해 뮤비도 예쁘고 노래도 취향저격이었던 위너를 이야기하고 핸드폰에 저장돼 있는 진기며 성규며 내 예쁜이들을 보여줬다. 또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냥 멜로디가 좋고 내게 닿는 느낌이 좋으면 듣는다고 말했다. 찾고자 하는 문장은 노래가 아닌 책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어서 굳이 가사로 노래를 가리지는 않는다고. 그러자 노랭이는 나는 모든 취향을 존중하고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제를 깐 것과 다르게 그는 자신이 하고자하는 빈티지 음악을 음악에 철학이 접목된 최고 엘리트 자리에 올려놓고 나머지 것들 특히 아이돌의 음악을 모두 까내렸다. 그러니까 뭐랄까. 일단 내가 하는 음악이 최고인데, 너네가 하찮은 그걸 좋아한다니 그래도 인정은 해 줄게. 너희 취향이 그 정도 수준인 걸 어쩌겠니,의 느낌이랄까. 노랭이는 아이돌 기획사가 자본으로 인디 밴드들의 기회마저 빼앗는 현실과 음악이 아니라 대중을 중독시킬 음역대와 멜로디를 찾는 데 혈안이 된 아이돌 음악에 대해 비판했다. 노랭이는 이를 두고 진실되지 못한 음악을 한다며 거짓말,이라고 표현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송 출연의 기회를 얻는 것에 있어서도 자본이 개입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이지만, 그게 아주 바람직한 것은 아니니 그건 너의 견해가 옳다고 치자. 하지만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쓰는 아이돌의 음악까지 단지 그들이 인디 밴드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까내리는 건 옳지 않다. 그 아이들이 돈을 벌어 오십만 원짜리 티를 입고 음악을 하는 게 왜 나쁜 건지 모르겠다. 그 아이들도 자기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쟁하면서 곡을 만들고 대중에게 곡을 들려줄 기회를 얻는다. 네가 그렇게 중시하는 가사. 철학과 블랙유머를 담아야 한다고 하는 그 가사. 그래 그 가사. 물론 중요하겠지. 하지만 모든 뮤지션이 가사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목소리에 진심을 담고 누군가는 멜로디에 혹은 소리의 공간에 진심을 담는다. 네가 감성으로 떡칠한 음악일 뿐이라며 까내린 넬. 그래,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넬. 그 넬. 그들은 헤드폰이나 이어폰이 아니라 스피커로 제대로 듣는 사람에 맞춰 믹싱을 한다. 그래서 보컬은 믹싱 엔지니어에 가까울 정도로 사운드에 집중한다. 한 앨범에 들어가기 위해 따로 녹음되는 소리만 200개가 넘고, 그 소리 하나하나를 계산해 음악을 만든다. 이 모든 건 가사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소리의 공간으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거고. 네가 쉽게 들려서 싫다고 말하는 그 음악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한다. 네 귀에 쉽게 들린다는 그 음악은 결코 쉽지 않다. 아직도 우리가 듣지 못한 소리가 있을 거다. 노랭이는 두 시간에 걸쳐 아이돌 음악을, 트렌디한 음악을, 미래지향적인 음악을 까내렸고 나는 기분이 상했다. 칠 년간 네가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편견과 싸워왔다고 했는데, 실은 네가 네 음악을 제외한 모든 음악에 가진 편견을 방어하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진이 빠졌다. 속상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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