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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새로운 신도림

KNACKHEE 2016. 8. 3. 20:13

 

 

모든 마감은 일단락됐고, 일을 하자면 할 게 없는 게 아니었지만 또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었고, 이 더위에 에어컨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부재한 상황이었고, 대표님은 사무실에 붙어 있는 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낮에 퇴근을 하게 됐고 2주의 방학 중 첫 번째 주를 보내고 있는 이 센세에게 벙개를 제안했다.

 

디큐브시티는 여름수련회를 마치고 집에 갈 때 신도림이 종점인 버스를 타고 내려 경유지로 지나가거나 지난 회사에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 쪽을 이용했던 게 전부였다. 어쩐지 신도림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씨즤븨 이용 때문에 익숙하단 이유로 테크노마트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정말 갈 데가 없다고 툴툴대면서. 디큐브시티가 이렇게나 좋은 곳인지도 모르고.

 

센세를 만난 나는 왜인지 무척이나 신이 나서 계속 싱글싱글 웃으며 실없는 소리를 해댔다. 학생들을 상대하며 저돌적인 /왜/를 시전하는 것이 습관이 된 센세는 내게 같은 성질의 /왜/를 던져서 나는 매번 놀라며 너의 /왜/가 너무 저돌적이라고 지적했다. 일차로 커피를 마시고 이차로 떡볶이와 튀김을 먹고 삼차로 빙수를 먹었다. 올해도 여름이 가기 전에 센세와 빙수를 먹었다.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 외대에 온 안녕바다를 보러 가기 전에 투썸에서 밀크티 빙수를 먹었던 게 (무척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우리의 기억에 꽤나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서 그 뒤로 매년 여름이면 둘이 함께 투썸에서 빙수를 먹는 게 연례 행사처럼 돼버렸다. 여름이 다 가고 있는데 같이 투썸의 빙수를 못 먹으면 발을 동동 구르며 아타까워 할 만큼.

 

학생 때 얘기와 연애 얘기가 나오면 나는 KDH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실 그를 기점으로 내가 선호하는 얼굴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연예인(특히 아이돌)을 예로 들면, 그전에는 옥택연이나 윤두준, 故채동하 씨 같이 뚜렷하고 단단한 얼굴을 좋아했는데, 그를 좋아한 이후에는 진기나 성규 같이 하얗고 말랑말랑한 이미지의 얼굴을 좋아하게 됐다. 일전에도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는 지금보다 더 둥글둥글한 얼굴이었던 진기가 민낯으로 푸스스- 웃던 이미지와 분위기를 닮았다. 또 통유리와 햇살만 보면 그가 생각난다는 감춰뒀던 고백도 했다. 처음 같이 밥을 먹을 때 한쪽 면이 통유리로 된 곳에서 밥을 먹었는데, 유난히 햇살이 좋았고 그 햇살이 그의 눈동자를 투명하게 비춰줬던 것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는 내게 완벽한 판타지다.

 

빙수를 먹으면서는 임용 공부를 할 때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가장 힘들었던 게 뭐였는지,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됐는지, 중간에 했던 아르바이트가 플러스였는지 마이너스였는지 등등. 이 센세는 준비해온 게 이것뿐인데 결국 이게 안 됐을 때를 가정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힘들었고, 도서관이 문을 여는 6시 50분에 맞춰 가서 10시까지 기계적으로 공부했으며,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가기 전까지 스탑워치로 8시간을 찍고 갔고, 아르바이트는 경제적인 면은 물론이고 고립된 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도움이 됐다고 했다. 센세의 지난 2년을 포괄적으로 듣는 건 사실 좀 처음이었는데, 나는 너 정말 애썼다고, 고생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내 연락을 받아줘서 고맙다고 고백했다.

 

역으로 가는 길에 센세가 씨유에 가는 걸 잊지 않게 말해달라고 했던 게 기억나서 씨유, 하고 외쳤다. 그랬더니 센세는 8시 하고 답했다. 나는 뭔 소리야, 저기 씨유 있다고-, 했더니 센세가 크게 웃으며 내가 자신에게 /몇 시유?/하고 묻는 줄 알았단다. 나도 같이 웃으며 내가 충분히 네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너무 화창해서 어쩔 줄 모르겠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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