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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1-13_삶이 녹록지 않아 떠난 부산 여행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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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1-13_삶이 녹록지 않아 떠난 부산 여행

KNACKHEE 2017. 2. 17. 23:54

 

내 대학 생활의 팔할을 차지하는 센세와 /가자, 가자, 가자/ 끝에 드디어 표를 끊고 KTX에 탑승했다. 대만일 뻔 했다가 부산으로 바뀐 여행지였지만 사실 어딜 가는지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센세랑 간다는 자체가 중요했고 어디든 지금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생각해 보니 부산 여행이 처음이기도 했다. 모든 게 적절했다.

 

 

 

이 센세는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밀린 생활 기록부를 썼다. 그 동안 나는 뭘 했더라.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센세의 집중을 방해하다가 조금 졸기도 하다가 간혹 깨서 음악을 듣기도 하다가 가져온 책을 의무감에 몇 줄 읽기도 했을 테다.

 

 

부산에서 먹은 첫끼는 돈가스.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돈가스. 내가 초딩 입맛이기도 하고 둘 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데엔 큰 흥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돈가스 집 이름은 경성식당이었는데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그 경성은 아니었다. 보편적이지 않은 것은 너무 특별해 기억에 강하게 남거나 본래의 것이 너무도 보편적이라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으면 잘 기억나지 않는데 이곳의 /경성/은 후자의 것이었다.

 

 

이 센세의 잠옷이 대학생 때 취향이었던 거라 침대에 올려두고 사진으로 남겼다. 이번 여행에서는 센세님의 공권력을 십분 활용해 좋은 호텔을 꽤 저렴한 가격에 얻었다. 사실 여기에 큰 의의를 두진 않았는데 여행을 하면서 편안한 숙소에서 묵는다는 게 여행하는 내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깨달았다. 둘 다 뚜벅이라 여행 내내 하루에 네다섯 시간을 기본적으로 걸어다닌 것 같은데, 따뜻한 물이 나오고 깨끗하고 푹신한 침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오랜 산책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해운대와 태종대는 듣던 대로 정말 다른 느낌이었는데 나는 태종대가 더 좋았다. 영겁의 시간이 새겨진 자연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평안하면서도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파도가 바위를 치는 소리, 물이 자기 속으로 돌고 돌며 내는 소리 등이 선명하게 들려 자꾸만 걸음을 멈춰서게 했다. 물론 지대가 험하고 내가 겁쟁이기도 해서 멈칫 멈칫 멈춰섰던 것도 있다.

 

 

부산에서 먹었던 것 중 베스트를 꼽으라면 시장 한복판에서 줄 서서 사서 시장 한귀퉁이에서 와구와구 먹은 씨앗호떡을 꼽겠다.

 

 

드라마 <쇼핑왕 루이>에서 보고 점찍어 뒀던 책방 골목은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그냥 그랬다. 소규모 책방의 특성상 책을 집어 들고 보기도 조심스러웠다. 아. 국제시장을 지나 책방 골목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한 순박한 아저씨의 멘트는 여행 내내 우리의 상황극거리가 됐다. 정말 아무런 흑심도 없이 해맑은 목소리로 /누나, 서울 어디 살아요?/ 하고 말했고 누님은 신이 난 목소리로 /목동!/하고 외쳤다. 문자로 읽으면 아무 감흥이 없겠지만 오리지널 부산 사투리로 리듬을 타며 들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된다.

 

 

날은 추웠고 우리는 광안리를 조금 걷다 카페베네로 으슬으슬 들어갔다. 카페인은 언제나 아늑함을 준다.

 

 

둘째 날 아침. 이 센세는 밀린 일을 마저 하고 나는 주일 예배를 드리러 말로만 듣던 수영로 교회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습관처럼 신고 있던 신발을 쳐다봤는데 신발에는 어제의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이렇게나 사소한 것에서부터 어제와 무관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걸 보며 여행은 제자리로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려 교회로 내려가는 길엔 볕이 좋았다. 주일 말씀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던 것을 해갈해 주었다. 센세가 들으면 섭섭해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이 말씀이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다. 다시 만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물은 것은 딱 하나였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얼마나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순종할 것인지는 묻지 않으셨다. 사랑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는 연약함에 몇 번이고 넘어져도 결국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기꺼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에게 율법은 속박이 아니라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종의 기준이 돼 오히려 자유함으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점심에 맞춰 이 센세와 달맞이 길에서 만나기로 했다. 길이 막혀 늦는 센세를 기다리며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여행에서 함께 보고 들은 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찼다. 덕분에 기다림이 지루함과 짜증이 아니라 온통 설렘으로 가득했다.

 

 

 

웨이팅을 걸어 놓고 먹은 타이인지 베트남인지 아시안 퓨전인지 하는 요리는 정말 1도 가감하지 않고 진짜, 진심, 정말로 맛있었다.

 

 

 

 

처음 방문하는 해운대 모래 사장에 한치의 고민도 없이 /녹록지 않다/를 그리듯 썼다. 정말이지 인생은 녹록지가 않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주위를 빙 에워싸고 먹이를 갈구하는 갈매기들을 보며 조나단 정신을 잃었네, 하며 혀를 찼다. 편안함에 길들여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와중에 한 갈매기는 태연하게 파도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인근에서 불이 나 검은 연기 덩어리가 하늘로 떠올랐다. 얼굴이 탈 정도로 볕이 좋은 날이었는데 연기가 해를 가리자 대기가 순식간에 냉각됐다. 공룡이 정말 빙하기로 멸망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동백이 없는 동백섬에서 아저씨는 바위같이 앉아 낚시를 하셨다.

 

 

더베이에서 야경을 보려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 오랜 산책으로 지친 몸을 늘어뜨렸다. 디저트도 함께 주문하며 대학생 때 여길 왔으면 고민하다 커피만 시켰을 텐데 돈 번다고 매번 카페에서 디저트까지 먹는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사회의 녹록지 않음을 소비로 상쇄하고 있다.

 

 

더베이101의 야경은 그냥 도시의 산물이었고 고대했던 치킨은 1도 가감 없이 맛이 없었다.

 

 

 

 

마지막 날 아침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조금 일찍 짐을 정리해 두고 나와 첫날 가지 못했던 용두산 공원을 산책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조금 남아 국제시장까지 걸어가 한 번만 먹고 가면 분명 아쉬웠을 씨앗 호떡을 하나씩 더 사 먹었다.

 

 

이 센세는 올라가는 KTX를 기다리면서까지 생활기록부를 작성했고 나는 맞은 편에 앉아 존 버거 아저씨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올라가는 길엔 내내 /봄날/을 들었다. 취향저격. 아마 이 노래는 언제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도 실패하지 않는 곡이 될 테다. 좋은 사람과 좋은 여행을 했으니 일상으로 돌아가 맞이할 날들은 봄날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끝으로 나와 함께 오래 걸어준 이 센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센세와는 늘 적당한 속도로 오래 같이 걸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