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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5-27_이 센세와 헛재가 헛헛한 마음 달래려 떠난 2018 겨울 제주 여행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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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5-27_이 센세와 헛재가 헛헛한 마음 달래려 떠난 2018 겨울 제주 여행

KNACKHEE 2018. 1. 28. 17:27



어쩌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지도 모른다. 여행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경험이 손에 꼽을 만큼이라 절대적인 수치의 부족으로 이를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아직까지는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다. 하지만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건 '여행'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상'을 벗어나고 싶기 때문일 테다. 일상의 자리만 아니면 이불 속이라도 상관 없다. 다만 여전히 곁에 가족이 있는 이불 속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값을 지불해야 하는 이불 속을 찾아야만 하는 거다. 여행 내내 회사 동료들과 가족의 연락이 왔는데, 회사 동료들의 연락보다도 가족의 연락이 더 참을 수 없었다. 일상의 자리와의 연결고리를 잠시라도 끊어내고 싶은 마음을 왜 몰라줄까 싶은 생각이 가족의 연락에서만 들었다. 요즘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게 가족이라 그렇다.







첫날 모든 일정을 통틀어 카페에 앉아 있던 시간이 가장 좋았다. 아,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받는 사람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미세한 차이의 캔들들을 고르던 시간도 좋았다. 처음 갔던 협재의 소품숍이 문을 닫은 바람에 버스를 타고 애월로 넘어가야 했는데 덕분에 일정에서 빼려고 했던 카페에 가게 됐다. 사랑스러운 P씨의 추천으로 일정에 넣었다 뺀 거였는데 맨도롱또똣의 그 곳이었을 줄이야. 웨이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계산을 끝내고 해서 황당했지만 기다리는 공간이 메인 공간보다 더 취향이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메인 공간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자리에 앉았다가 창가 자리가 나자마자 짐을 옮겼다. 바다 곁을 돌아다니는 아기 고양이를 창 너머로 귀여워했다.




그래도 서울보단 따뜻했겠지만 제주는 기대한 것 이상으로 추웠고 카멜리아 힐이 메인이었던 둘째 날에는 눈보라가 몰아치기까지 했다. 눈앞에서 배차 간격 한 시간의 버스를 놓쳤고, 우왕좌왕 하는데 지나가던 차가 우리 앞에 서더니 여성분께서 가는 방향이 같으면 태워주시겠다고 했다. 친절해! 상냥한 마음만 받고 택시를 불렀는데 전직 지방 언론사 기자였던 기사님은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자꾸만 하셔서 가는 내내 힘들었다. 카메라 렌즈는 닦아내도 자꾸만 물방울이 맺혔는데 단체 관광을 오신 아주머니들은 개의치 않고 시끄러우셨다. 대단해.



중간에 들어간 온실에서 귤색 모자를 쓴 돌하르방을 만났다. '괜찮아' 하고 말해줄 것만 같다가도 그냥 아무 말 없이 '푸흐흐' 하고 웃어줄 것만 같기도 했다.



오설록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았고 모든 것은 명동 오설록과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겨우 난 자리를 사수해 쉐이크 같은 것을 먹었다. 특별함을 기대했던 제주 이니스프리는 실망스러웠고 올라가는 언덕의 풍경이 앞서 본 카멜리아 힐보다 아름다웠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었다.



가려던 곶자왈 근처의 음식점의 브레이크 타임을 확인하지 않아 귤돌이네 집에 있던 귤돌이 외엔 수확을 얻지 못하고 택시를 불러 협재로 넘어갔다.




해물라면과 해물돌솥으로 제주 느낌 물씬 나는 식사를 하고 이 센세가 찾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정착했다. 카페에 가기 전에 또 다른 소품숍을 찾아갔었는데 아무런 표식도 없이 영업을 하지 않았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는 각국의 동화책이 벽지처럼 늘어져 있었고 아이스만 된다는 딸기 우유 앞에서 내뱉은 탄식으로 얻어낸 따뜻한 딸기 우유는 달콤했다.



내가 처음 찾았던 중문 쪽 숙소가 대중교통이 좋지 않아 이 센세가 다시 찾았던 한림의 숙소는 정류장과는 가까웠지만 그 정류장을 지나치는 단 한 대의 버스의 배차간격은 1시간이었다. 새로 지은 곳이라 깨끗했지만 아주 추웠다. 코가 시려워 침대 이불보를 거실 바닥에 깔고 보일러를 최대로 높였다. 가장 문제는 어떤 보온도 되지 않는 화장실 겸 욕실. 씻는 게 정말 난코스였다. 마지막 날 아침은 날이 갰지만 여전히 바람이 찼다. 덕분에 겨울 제주를 한껏 만끽했다. 삼일 내내, 바람이 견딜수 없어질 때마다 우리는 '그래, 우리가 또 언제 이런 제주도를 경험하겠어'란 말을 되뇌었다.


숙소를 나오면 마주하게 되는 풍경에 인사하며

잘 지내자, 고 생각했다.


그래. 잘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