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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ERATURE

고맙다, 여전히 우리여서

KNACKHEE 2019. 4. 9. 12:25

십 년 차 친구 이 센세와 떠나는 첫 해외여행, 다카마쓰_03


아침엔 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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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타 핸드폰을 켰는데 갑자기 화면이 보라색 톤으로 바뀌어 있었다. 소니를 쓰고 있는 터라 "왜 그래, 너네 나라잖아!" 했더니 센세가 "고국을 떠나야 하니까 슬퍼서 그렇지." 하고 받아줬다.

공항엔 커플이 많았다. 센세가 나더러 다음 여행은 남자친구랑 오라기에 아니 뭘 좀 데려다주고 그런 말을 해야 할 거 아니냐고 답했다. 어떤 타입이 좋은지 묻길래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센세가 "걔네 다 빼고, 내가 들어 본 이름 다 빼고." 하며 선수를 쳤다. "그런 애들은 현실에 없잖아! 있으면 내가 가졌지." "어차피 그런 스타일 안 좋아하잖아!" ",... 다다익선?" "오?"




매일 타들어 가는 느낌으로 나를 괴롭히던 식도가 여행에선 내내 잠잠했다. 그리고 물론 짧은 체류 기간과 일상에 섞여들기 어려운 여행자란 조건이 있기도 했지만 한국에선 자주 접하게 되는 무례를 느끼지 않을  있어 여행 내내 쾌적했다. 손목시계를 빠뜨리고 간 탓에 허전해하며 맨손목을 자주 들여다봤다. 여행의 끝은 가방의 물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그사이 세탁기가 끝낸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놓는 것이 되겠지.


다녀온 지 두 달이 넘은 이 여행 일기를 꼭 쓰고 싶었던 건 센세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어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2017년은 하루도 빠짐없이 지난한 날들의 연속이었고, 내내 회사에 있었기에 회사 일 외에는 말할 사건도 마음도 없었다. 이 센세를 만나서는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지난 뜨거운 생활(독서 모임을 빙자한 잡담회)에서 주워들은 동기들의 소식을 목소리 톤을 높여 전했다. 그걸 한참 듣던 센세는 말했다. "아니 그런데, 너는 요즘 어때."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이후에도 그 장면을 자주 곱씹었다. 센세 덕분에 알았다. 사이, 는 무겁지 않은 말들 사이에서도 깊어진다는 걸. 가벼운 말들 사이에 숨겨 놓은 진심을 알아채고도 아는 체하지 않고 조용히, 또 꾸준히 마음을 주는 시간 속에서 깊어지는 사이, 가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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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