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살기 진짜 너무 힘들다 본문

DAILY LOG

살기 진짜 너무 힘들다

KNACKHEE 2020. 5. 13. 19:57

작업 막바지에 이 프로젝트 자체를 중단 하니 마니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아니 표지가 왜. 이게 어때서! 정말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고, 너무 절망적이라 표정 관리가 안 됐는데 S대리님이 마음이 쓰였는지 점심 때 산책을 하러 가자고도 해주고 퇴근 전엔 연봉 1억 받는 게 아니면 회사에 큰 책임을 느낄 필요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해가며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본인도 넘치는 업무에 치이고 있으면서 내게 마음을 써준 게 너무 고마워서 마음이 뜨끈해졌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가장 괴롭다. 나를 고용한 사람에게 무능한 사람으로 비춰질 것도 너무 싫고. 집에 가서는 엄마한테 아무리 그래도 비슷한 일을 계속 해왔는데 어쩜 이렇게 진척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비슷한 것과 같은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했다.

 

 

 

이 난리통에서도 과제는 해야 하니까 퇴근하고 인사동으로 넘어가 <인사이드 마그리트>전을 봤다. 미디어 전시라 원작은 아마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이렇게나 많이, 그리고 이렇게 크게 볼 수 있는 자체로 좋았다. 몇 전 전에 비슷한 류의 <모네>전을 봤을 때는 이런 형식에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몇 년 사이에 생각이 좀 달라졌다. 이런 식으로라도 하지 않으면 작품을 크게 볼 기회가 많지 않다. 지난 툴루즈 로트렉 전에서도 보고 싶었던 작품이 넘어오지 못해서 아쉬웠고. 원작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라도 다양한 작품을 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이번 전시에서 '빛의 제국' 같은 경우엔 연작을 영상으로 이어 보여줘서 더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었다. 또 공간을 막고 영상으로 둘러싸는 구성은 그 자체가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줘서 색다른 감상을 유도했다.

집에 오는 길에는 오랜만에 H 선배와 통화를 했다. 거의 1년 만의 통화였는데 별다른 서두를 쌓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오래 지속된 관계의 이점. 통화의 말미,

- 진짜 좀 잠잠해지면 봅시다

마흔 되기 전에 봐요

- 그러게. 마흔 되기도 전에 지구 멸망하는 거 아녀?

망했음 좋겠다

- 인정

_

 

/"산은 움직여 없어질지라도 너에 대한 나의 한결같은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평화에 대한 내 약속은 취소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너를 불쌍히 여기는 나 여호와의 말이다." _ 이사야 54장 10절(KLB)/

> 보통 산을 옮길 만큼,을 큰 믿음에 대한 비유로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부정적인 변화의 표현으로 쓰인 게 흥미로웠다. 산이 움직여 없어지려면 아주아주 긴 세월이 흐르거나 모든 게 사라질 위험에 처하는 천재지변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어느 쪽이든 /변함 없는/의 가치가 극대화된다.

 

'DAILY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긴장이 풀려서 눈에 힘을 줬다  (0) 2020.05.15
마음들  (0) 2020.05.14
20200511-12_물린다  (0) 2020.05.12
도넛 피어  (0) 2020.05.10
3개월 만의 33번째 뜨거운 생활,이라서 불타의 3:33이 생각났지 뭐야  (0) 202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