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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요즘 약국에 갈 때면

KNACKHEE 2020. 10. 19. 18:53

 

 

지난 주부터 다래끼 때문에 회사 근처 안과를 다니고 있다. 진료를 받고는 지하에 있는 약국에 처방전을 가져가는데 병원이 잔뜩 있는 건물인데다 점심시간(인 게 영향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이라 처방전을 접수하시는 분의 손이 아주 바쁘다. 그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호주에서 공부하고 있는 M을 떠올린다. 지난 주에는 한국에 와서 약국을 열면 접수원으로 고용해달라고 질척대기도 했다. 답이 정해진 일을 빠르게 많이 해내는 모습이 무척 명료하고 깔끔하게 느껴졌다.

기획회의 때는 내가 올린 안의 예상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오갔다. 반박하고 싶은 말이 혀끝에 맴돌았지만 네, 만 남기고 모두 머릿속에만 가둬뒀다. 돈이 많은 사람 모두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투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그만큼 바꾸기 어려운 문제인 탓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땐 진전 없이 말로만 해댄다고 할 게 아니라 이렇게 변화가 더딘데도 계속 관심을 두고 작은 행동이라도 해오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퇴근길에는 모교 뉴스레터에서 같은 과 분들이 등단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걸 보며 '오, 저분들은 어쨌거나 왕년에, 카드를 갖게 되셨어!'하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아주 반응이 없는 책을 만들고 있다. 그래도 이전 책들은 저자들이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SNS 팔로워들이 좀 있었는데 이번 저자는 둘 다 없어서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반응이 없는 책을 만드는 일은 아주 지난하다. 결국엔 내가 저자와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에너지를 별성과가 없는 데 쏟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생각에, 회사의 수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 잉여인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식당해버리고 만다. 겸손하되 담대하고 자유하되 지혜롭고 싶다.

와, 아니 그런데 나 오늘 힙업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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