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지금의 나는 언제부터의 나인가 본문
여름이 막 시작되던 6월의 일이었다. 인스타로 작가님의 개인전이 9월에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작은 화면 너머로 보면서 감탄했던 유리컵 정물화를 직접 볼 수 있는 건가! 하는 설렘에 여름 내내, 자주 마음이 부풀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기대는 실제 전시 공간을 마주했을 때 허업, 하고 들이마시는 감탄으로 치환됐다. 실제로 보니 정말이지, 말갛게 아름다워서.
전시 초입에 있던 인터뷰도 여러 번 봤다. '작업의 중심 요소'를 묻는 파트에서 '사랑하는 것들, 귀하고 소중한 순간이나 경험을 많이 그린다'는 답변에 2018년 여름, 혜화에서 작가님의 그림 클래스를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네 번째 퇴사를 하고 막 백수가 된 참이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정말 사랑스럽게 반짝였고, 그들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을 표현하기에는 내 언어가 부족했다. 그래서 이들과의 추억을 그림으로도 기록하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신나게 미술학원에 다녔던 중학생 때 이후로 가장 즐겁고 꾸준히 그림을 그린 시기였다. 클래스가 종료된 후에도 계속해서 사랑스러운 이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고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러는 동안 그 대상을 향한 애정은 더욱 짙어졌고.
유리컵 정물화가 어떤 신(scene)이 담긴 사진과 매치되어 한 프레임 안에 담긴 것이 정말 좋았다. 사진 속 장소에 머문 이가 누군가와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음식을 나눈 시간을 상상해보게 됐다. 안쪽 공간에서 작가님의 이전 색연필 작업들을 한가득 마주할 수 있었던 것도 즐거웠고.
전시 공간에 머물면서 또 생각했다. 정말이지 아티스트는 '왜, 굳이, 그렇게까지'를 해내는 사람인 게 맞는 것 같다고. 이게 요즘 나의 사전에 등재된 아티스트의 정의다. 굴절과 반사, 겹쳐지는 색들이 이렇게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표현되다니. 유리컵 정물 시리즈 아트북 내주셨으면 좋겠다.
요즘엔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 버전의 나는 언제부터의 나인가?'
사진 촬영이 불가한 덕분에 아주 조용한 환경에서 전시를 감상했고, 미술관을 나오자 마치 명상을 한 것처럼 온몸이 나른했다. 최근에야 이해하게 된 명상의 기능 중 하나는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이었다. 그래서 과거나 미래를 향해 가기 마련인 생각 대신, 몸의 감각에 집중해 지금 여기에 머무는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이번 전시를 보면서는 핸드폰으로 메모도 하지 않았고, 생각을 확장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눈앞에 놓인 작품을 문자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 집중했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죽음이 가까워진 시점에 구축된 점화의 세계는 커다란 캔버스에 표현됐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 커다란 캔버스가 좀, 작게 느껴졌다. 캔버스가 작가의 세계를 가득 담아내는 것인 동시에 그 규모를 제한해버린, 그런 느낌. 작가의 세계가 우주처럼 다가왔다.
오묘한 보랏빛의 작품은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보고 있으면 무척 심란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작품이 내뿜는 기운에 휘말려버릴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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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대중성 있는 예능에 나오는 게 왜 내키지 않는지 생각해봤다. 내가 좋아하는 애들이 아무렇게나, 아무 입에나 오르내리는 게 싫은 게 아닐까. 그 예능 한편 보고 걔네에 대해 뭐라도 아는냥, 마치 다 파악한냥 떠드는 걸 별로 듣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 몰라 그만 입덕해 ㅠㅠ 내 포도 맨날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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