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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케이크는 못 참지 본문
복숭아 케이크는 못 참지. 시즌 떠나기 전에 쓱쓱 다녀옴.
<현대미술 글쓰기> 를 읽다가 깨달았다. 내 논문이 실패한 이유는 입증이 불가능한 질문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란 걸. 이걸 초반에 깨닫고 주제의 방향을 재정비했으면 같은 포기여도 조금 더 의미 있는 시도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방향이 잘못됐을 때도 길을 찾아보겠다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접하면서 공부가 되기는 했다. 아쉽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불에 그을린 뒤 먹으로 색을 입힌 목재는 마치 한옥을 지을 때처럼 별도의 연결 장치 없이 쪽매 방식으로 맞물린다. 결합부는 태극기의 건곤이감의 형태로 표현되고 그 위로는 종과 횡, 양쪽 모두로 확장되는 형태의 투명한 아크릴 판이 연결된다. 이러한 <LIN 1>이 만들어낸 공간 사이에는 한지와 먹으로 만든 또 다른 기둥과 평면에 재구성된 <PLANE> 연작이 놓여 있다.
첩첩이 놓여 길을 내고 공간을 만드는 구성은 서양의 건축물을 떠올리게 하지만, 소재와 담고 있는 맥락은 한국의 것이다. 검은 목재는 겸허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것이 소화燒火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자신의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이 되려 부단히 애쓰는 신앙인의 고백을 떠올리게 만든다. 누르스름한 한지에 여러 겹의 먹이 스민 기둥은 목표 지점을 향한 시도의 기록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튜디오 신유는 '디자인은 번역이다'를 모토로 삼는다. 전시를 보고 나면 그들이 작품을 통해 좁히고자 했던 문화적 간극과 시대적 간극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특정 시대와 문화에 가치 있게 존재한 무언가에 창작자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더한 해석으로 동시대의 우리가 이를 새로운 추억으로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
전시장 한쪽 벽에는 디자인 노트가 낱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것을 보면서는 자신이 무엇을 왜 하는지 아는 이들이 가장 멋지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했다. <PLANE> 연작은 병풍을 떠올리게 하는 비율의 작품이었다. 몇 년 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본 병풍전 이후로 그것의 형태와 의미에 빠져 있어서 이 팀의 본격적인 병풍 작품을 볼 수 있으면 행운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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