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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은 스스로 파야 제맛 본문

사막과 바다

























































전예진 작가의 작품에서 단연 도드라지는 것은 복면을 쓴 인물과 개다. 하지만 조금 더 시선을 넓히면 작가의 붓끝을 통해 형태를 얻은 비가시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공기, 빛, 물, 불, 분위기 같은 것들. 이들은 색으로 구체화되며 복면의 존재들을 둘러싸고 존재들이 불러낼 기억을 맞이한다.
작가의 <Twisted World> 연작의 이전 작업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넓은 면적의 파란 바탕과 색연필로 긁어 효과를 주었다는 부챗살 모양을 한 오묘한 빛깔의 식물 군집이었다. 개인전을 거듭할수록 작품의 색은 다채로워지고 복면을 쓴 이들의 옆에 등장하는 존재들이 추가되며 배경은 여유로우면서도 자세하다.
짧고 거친 선으로 이뤄졌던 화면이 찰나인 듯 보이는 점의 조합으로 변해가는 것에서는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담고 싶은 세계가 더 디테일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작품에 녹아 있는 작가의 초기 연작 <Eternal Moments>에서 잎의 문양 등은 작가의 세계가 확장될 뿐 아니라 견고하게 축적되고 있음 또한 보여준다.
작가는 작가 노트에 적은 '꿈에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얼굴들이 있다'는 말을 통해 작품 속 배경을 암시한다. 그리운 존재는 시간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움에 잠식된 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며 같은 장면을 곱씹는다.
그리운 장면은 처음엔 흐릿한 형체로 나타났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또렷하게 그 모습을 드런내다. 그 선명함 속에서 드디어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 그리움에 빠져 있던 이는 자신이 그려나갈 다음 장면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움에 매몰되거나 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히 간직하며 이를 동력으로 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가님의 세계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와 색으로 찰랑이며 나아갈지, 나는 너무 궁금하다.





무덤은 스스로 파야 제맛이지. 모르겠다. (미래의 내가) 또 어떻게든 해내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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