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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점점 더 커지는 그림

KNACKHEE 2019. 5. 17. 21:32



호크니 아저씨 전시의 시작은 습작들이었다. 사랑을 주제로 그린 세 번째 습작에 'ㄹ'로 보이는 형태가 있었고 함께 간 Y언니에게 '세 번째 사랑 그림에 왜 리을 있죠?' 했더니 '럽~ 럽~ 럽' 하고 받아줬다. 반할 뻔.


동성애를 그린 작품들을 보면서는 자기의 정체성을 먼저 세우지 않으면 그 예술가의 세계는 시작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기존 것에 반기를 드는 무언가를 내놓을 때도 결국 기존의 것을 다시 한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사람만큼 기존의 것을 많이 그리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피카소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작품들은 자꾸만 발걸음을 붙잡았다. 의자와 컵, 기타가 거의 같은 크기로 놓인 작품이 인상적이었는데 discors merely magnifies _ 부조화는 단지 확대(과장)에 불과하다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지는 '움직이는 초점'은 한 공간을 파노라마로 찍으면서 VR로 360도 회전해 놓은 것 같은 작품들이었다. 원근과 기억, 공간에 대한 그만의 해석. 2D와 3D를 아우르는 작업들을 보며 이분 정말 열심히 사셨네, 싶었다. 이즈음 무대 디자인 작업을 한 것도 작품의 차원을 확장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보통은 초점을 흐리고 움직이게 하면 작품을 망치고 갖춰야 하는 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는데 그 틀을 깨버린 과감함에 대해 생각했다. 이미 받은 인정이 이를 가능하게 한 걸까. 아니면 그런 게 없어도 기존에 보여준 것과 같은 다양한 시도를 했을 사람인 걸까.


그가 영상에서 사진은 회화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고 말할 때 느껴진 확신이 좋았다. 사진으로는 회화의 느낌을 낼 수 없다면서. 그러면서 그는 시각을 재충전하려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A를 하고 싶었던 사람이 A를 거쳐 B, H, P를 경험했기에 결국은 A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이 기술 사회에서 아날로그가 여전히 회자되는 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의 회귀를 원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인 걸까. 그렇다면. 책 역시 끝끝내 없어지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랜드 캐니언을 그린 작품은 크기도 색감도 정말 광활해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그 앞에 한참 앉아 있었다. 이 그림만을 위해서 이 전시를 보러 와도 아깝지 않겠단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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