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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 Bossanova,
시간과 물질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함을 깨달았다. 예전 교회 전도사님이 늘 우리를 혼낼 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하나님은 거지가 아니다. 남는 것을 선심쓰듯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온전한 마음으로 올려드려야 한다. 성실한 종이고 싶다.
겨울옷을 보면서 포근하다,가 아닌 무겁다, 두껍다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된 게 못내 아쉽다. 꽃청춘 아이슬란드 편을 이제야 다 봤다. 정우 씨가 이런저런 일들로 힘들어하는 강하늘 씨한테 해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있으면 흔들릴 일이 없다는 맥락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네가 겪은 일은 지금 네가 반응하는 것만큼 엄청난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거라고, 그렇지만 지금의 넌 꽤 잘 하고 있는 거라고 해줬다. 부드럽고 강한 조언이었다. 흔들리지 않고 싶다.
* 난생 처음 제본소에 가서 교정을 봤다. 치열하지 않은 현장이 없구나. * 사무실이 오피스텔 같은 곳이라서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있는데, 권사님st의 아주머니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게 됐다. 아주머니가 나에 대해 궁금해 하시길래 묻는 말들에 대답해드렸다. 아주머니는 내게 밖에 활짝 핀 목련처럼 복스럽게 예쁘다고 해주셨다. 기분이 활짝 피었다. * 연희동에 도착해서는 괜히 잼이 사고 싶어서 무설탕 잼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얼그레이와 무화과를 양손에 들고 고민하다가 얼그레이를 골랐다. 그리고는 훈훈한 주인 오빠에게 괜히 물었다. 잼이 달지 않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 굳이. 설탕이 안 들어갔으면 달지 않아요? 하고. 훈훈한 주인 오빠는 설탕 대신 과일 등에서 얻은 천연 단 맛을 내는 요소를 사..
봄이 오고 있다. 손목터널증후군을 의심받았으나 아니었다. 뼈와 신경에 문제가 없으니 근육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물리치료를 받으면 금방 좋아질 거라고. 관련 검사를 받다 보니 자연스레 목 디스크 유무도 알게 됐다. 언제부턴가 뒷목이 찌릿찌릿하는 순간들이 있어서 걱정했었는데 이 역시 아니었다. 아. 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황된 걱정들이었던가. 백수의 마지막 날이니까 도레도레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얼마 전 교회 근처 카페에서 먹은 당근 케이크가 무척 맛있었어서 이번에도 고마워 케이크를 시켰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자가 더 좋았다.
★고린도후서 04장 10절-12절 "무엇을 짊어지고 다니나"_김기석 목사님 우리가 부활을 경축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부활은 진실과 사랑이 어둠에 맞서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본문에 보면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천사들이 시신이 놓여 있던 머리맡과 발치에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언약궤를 덮고 있던 속죄판(mercy of God)의 위치와 같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속죄의 완성과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의 표상이고, 속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삶의 모델이다. 믿는 사람은 부끄러운 행실을 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 말씀을 왜곡해선 안 되며, 정직하고, 십자가가 생명의 길임을 삶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모두 악이었다. 스무 살 아이들이 처음 자신의 의지로 나간 세상에서 마주한 것은 모두 악이었다. 가정적, 사회적 배경으로 사람의 존귀를 논하고, 계급을 나누고, 베푼 선은(그 방법이 썩 좋진 않았을지라도) 누군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남용된 누군가의 권력에 의해 악으로 돌아온다. 그 악 앞에서 아이들은 두렵다. 가장 의로워보이는 아이 역시. 두렵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이 살인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만 있었다면, 그 아이에겐 또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혼재해 있다. 결국 악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무너져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아이는 악으로 물든 세계를 이기지 못한다. 온몸으로 부딪쳐 입술이 터지고 얼굴에 생채기가 생겼지만, 그것들 역시 시간이 지나 말끔하게 아..
★누가복음 22장 39절-46절 "왜들 자고 있느냐?"_김기석 목사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이자 세상의 중심이었다. 이 체제에 기대 살고 있는 성직자들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특권을 누렸다. 그들이 이것을 당연시하고 애쓰는 순간 성직자들의 몰락이 시작됐다.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워야 할 것이 타락하면 마성적이고 악마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종교가 악과 결합하면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자기 자신의 옳음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편협과 폭력을 낳는다. 하지만 타자의 생명을 함부로 뺏는 것은 명분과 관계 없이 악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앞두고 마지막 만찬을 끝내신 뒤 올리브산(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다. 성경에서 동산은 꽤 의미가 있는 듯 보인다. 보편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
서너 번의 시도와 시도 만큼의 실패를 경험하고 난 뒤에야 드래곤 레드를 볼 위에 알맞게 발색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선배는 연극도 보고 밥도 먹고 차도 거의 다 마셔갈 즈음에 볼터치를 한 거냐고 물었다. 내내 궁금했다는 듯이. 그렇다고 했더니, 더운 건 줄 알았단다. 레드 블러셔를 마스터하려면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여하튼. 이게 얼마만이지, 싶을 정도로 오랜만에 연극을 봤다. 김영하 아저씨 책을 원작으로 한 빛의 제국을 보고 싶었으나 매진이어서 선배가 일전에 재밌게 봤다던 김수로 아저씨 극단의 연극으로 우회했다. 연극은 즐거웠는데, 어쩐지 내가 내내 무대 위에서 성대를 긁어 소리를 내고 헤드뱅잉을 한 것처럼 심신이 피곤했다. 발 길 닿는 대로 걷다 들어간 일본 음식점은 무척 훌륭했고, 프랜차이즈가 아..
* 4월부터 광화문 쪽으로 출근을 하게 됐다. 그래서 오전에 사무실에 들러서 인수인계를 받았다. 인수인계를 해 준 아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페이스가 내 취향이라 선뜻 인수인계를 해줬으니 디저트를 사겠다고 말했다. 작은 여자애였는데 굉장히 야무지고 시원시원하게 생겨서 보자마자 호감이 갔다. 아이는 디저트를 먹으며 소소한 팁 등을 알려줬다. 럭키. 개인적으로 고디바는 맛있었으나 굳이 그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먹고 싶을 만큼의 맛은 아니었다. * 저녁에 있는 성금요일 예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오늘 벼르던 오롤리데이에 가자! 하고 광화문에서부터 걸어갔으나 매달 23일부터 말일까지 카페는 휴무고 2층 숍만 구경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맙소사. 허무하기도 하지. 숍에 가서 선인장이 그려진 작은 노트를 ..
* 이런 저런 이유로 쿠랑 이케아를 세 바퀴나 돌았다. 이케아는 딱 그 값만큼의 가구와 딱 그 값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특히 음식은 최악. * 밑창이 얇은 신발을 신고 한참 걸었더니 무척 피곤해져서 참석하려고 마음먹었던 예배에 대한 갈등이 생겼다. 못 가겠어, 라고 말했다가 이내 그래도 가야지, 하고 내뱉곤 갔다. 예배까지 시간이 남아서 교회 근처 카페에서 엄마가 맡긴 일을 조금 했다. 이 카페는 아늑한 느낌이라 좋고, 특히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가 담겨 나오는 트레이가 스뎅이라 좋다.지금의 교회에 출석하고 나서 처음으로 참석한 기도회였는데 일반적으로 내가 경험했던 기도회와는 느낌이나 구성이 많이 달랐다. 시종일관 차분하고 조용했으며 찬송을 부르다 읽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침묵 기도를 했다. ..
이곳으로 이사온 지 반 년이 다 됐는데 집 바로 옆에 있는 산을 이제야 올라봤다. 가까이 있다고 혹은 다 갖춰져 있다고 뭔가를 하는 건 역시 아니다. 어떤 경로로 갈까 고민하다, 정상이 멀지 않은 것 같아서 이왕 왔으면 정상은 찍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정상으로 가는 코스를 택했다. 경사가 가팔라서, 올라가는 건 별 문제가 안 되지만 이 길 그대로 내려오려면 고생 좀 하겠다, 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산을 올랐다. 정상에 도착해선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나무 사이로 지는 해를 보며 생각지 않은 묵상을 하게 됐다. 성경에는 인간을 만들 때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고 기술돼 있다. 하나님께선 인간에게만 자신의 형상을 부여하셨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창조물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창작자..
* 써야만 하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그럼에도 쓰고 싶었다가 그럼에도 쓰고 싶지 않았다. 애증이다. 이 마음은 결국 또 어떤 모양새로든 변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쓰고 싶지 않다. * 나도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대안이 없어서 그걸 묻는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나도 그걸 모르겠는데 뭘 어쩌라는 거냐고. 엄마는 그럼 그렇게 말하라고, 너도 네가 뭘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상태니까 좀 기다려 달라고 말하라고, 그렇게 내지르면서 좀 내버려두란 식으로 대응하는 건 제발 그만두라고 했다. 불편한 대화도 필요하면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심의 끝을 달리고 있다. 나는 대화하는 법을 모른다. * 내게 답은 없다. * 누군가의 삶에서 무언가 집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