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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 Bossanova,
* 건물 전체가 갑자기 정전이 되는 바람에 세 시에 이른 퇴근을 하게 됐다. 디자이너님이랑 헤일리스 카페에서 2-5시에만 한정 판매하는 2롱고&디저트 세트를 먹으며 좋은 책은 어쨌든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것 같다는 얘길 나눴다. 세 시 반쯤 되자 디자이너님 코트가 무지개로 물들었다. 무지개는 점점 내 쪽으로 자리를 옮겨 오더니 네 시쯤 되자 모습을 감췄다. * 약속 장소인 디큐브시티에 일찍 도착한 덕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구경했다. 두어 개는 사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늘어선 곳에서 나는 너무 신명나서 슬쩍 흥 난 몸짓을 해보이기도 했다. 책은 오전에 잔뜩 주문했으니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핫트렉스로 가서 센세에게 줄 /이런 손길은 네가 처음이야/ 펜을 사고, K이 갖고 싶어 했으나 판매처가 묘연했던..
뇌에 경화제를 뿌린 것 같다. 한 문장도 쓸 수가 없어서 일단 퇴근했다. 울 것 같다. 대표님의 성능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서 이것 저것을 듣다가 갑자기 이 곡에 꽂혀서 트로이 거랑 남준이랑 정국이가 커버한 걸 돌려 들으며 퇴근을 한다. 요즘 꿈을 꾼다. 인터뷰이가 내 질문지를 보곤 애기가 썼네, 하는.
연이은 주말 외출과 대자연이 찾아오는 바람에 올해는 그냥 건너 뛸까, 도 생각했지만 인스타에서 딴짓의 세상 작가님에게 사인을 받으러 가겠다고 단 댓글을 공수표로 만들 수는 없어 예배를 마치고 꾸역꾸역 UE8에 갔다. 예보에도 없던 비가 흩날리는 바람에 역에서부터 일민미술관까지 걸어가면서 한숨을 열 번은 쉰 것 같다. 그래도 행사장에 들어서는 순간 오길 잘 했구나, 싶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1층을 건성건성 살펴보곤 목표 부스가 있는 2층으로 돌격했다. 부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서성서성이다가 사람이 갑자기 빠진 틈을 타 가까이 진격했다. 새로운 것이 보여서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작가님이 그것의 용도를 설명해주셨다. 나는 얌전히 설명을 듣다가 /사실-/ 하고 운을 떼곤 가방에서 작가님의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
* 올해의 첫눈을 부암동에서 맞았다, 탱과 함께. 시국 때문에 종로-광화문 일대 교통이 마비돼 종각에서 7212에 퇴짜를 맞아 발을 동동 구르며 건너편으로 가 7018에 구애를 했다. 걱정을 한가득 담아 /기사님, 부암동 가나요?/ 하고 물었고 기사님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것도 정오 전이라 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민지민지가 정오가 넘은 시각에 종각역에서 옴싹달싹 못하게 된 후에야 알게 됐다. 탱이랑은 파란대문에서 세 점의 스테이크가 올라간 나시고랭과 서너 점의 새우가 들어간 로제 파스타를 먹었다. 무슨 조합인가 싶었지만 둘 다 맛있었다. 늦잠을 자서 식사를 함께하지 못한 민지민지를 위해 탱이 추천한 작은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서는 내가 반했던 야나문에 갔다. 지난번 커플이 말다툼 끝에 ..
에디는 온몸의 세포로 연기하는 듯했다. 순간순간 소름이 끼쳤다. 극의 초반부에는 에이나르가 게르다에게 /Good Luck/이라며 행운을 빌어주고 네가 원하는 건 다 해줄게, 하며 보호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에이나르가 릴리가 된 극의 후반부에는 오히려 게르다가 릴리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보호자를 자처한다. 모두가 릴리가 미쳤다고 생각할 때도 게르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 절대. 비록 릴리의 발현으로 부부 관계는 깨졌지만 한쪽이 약해졌을 때 한쪽이 강하게 서서 힘이 돼 주는 모습은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 로렌스 애니웨이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대니쉬걸이 좀 더 단아한 느낌이라 좋았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였을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구나 싶어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
* 뭔가 따단-의 느낌이다. * 오전에 있던 일산에서의 인터뷰는 너무 바쁘니 1시간 안에 사진 촬영까지 끝내 달라고 해서 30분만에 인터뷰를 끝내고 10분만에 사진 촬영을 끝냈다. 내가 40분 인터뷰하자고 2시간 반 걸려 일산에 왔나 자괴감 들어, ... 그래도 대표님이 훤칠하시고 자료 준비를 잘 해주셔서 심란했던 마음이 좀 풀렸다. * 바로 봉천으로 넘어가 DS의 김장 봉사를 취재했다. 한편에선 복지관 애기들이 유아원 수업의 하나로 김치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자기가 만든 거라며 처음 보는 내게 김치를 내밀었다. 날것의 느낌이 나는 김치를 좋아하지 않아서 할머니가 숱하게 김장을 할 때도 안 먹던 건데, ... 애기가 주는 데 거절을 할 수는 없어서 /이거 너무 큰데, 아하하하-/ 하는 말로 ..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고 한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우리나라 학생이 전철 철로에 떨어진 승객을 구하려다 세상을 떠난 그때 두 명의 일본인도 함께 철로에 뛰어들었다고. 그 중 한 명이 요노스케다. 사실 요노스케라는 이름이 왜 웃긴 건지 몰라서 그냥 촌스러운 이름이겠거니 지레짐작하고 영화를 봤다. 영화는 슬픔을 요노스케의 해맑음으로 보여줬다. 요노스케의 사고 소식은 라디오와 훗날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표정으로만 전했다. 아마 우리나라 영화 같았으면 꼭 전철이 들어오고 전철의 불빛을 보며 철로 위에서 동공이 확대된 주인공의 얼굴을 클로즈업 했을 테다. 요노스케 이야기에서는 그런 노선을 취하지 않은 덕분에 나는 요노스케의 해맑은 얼굴만을 머릿속에 새길 수 있었고 그랬기에 라디오로 그의 사고 소식을 접하며 ..
* 애기들 걸리라고 던진 포켓몬에 26살 어른이가 낚였다. * 거의 5년 만에 다니엘 청년부였던 애들을 만났다. 지금은 아무도 그곳에 남아 있지 않다.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애들은 월요일 저녁부터 고기를 구웠다. 회사 때문에 늦게 합류하는 나는 내가 도착할 때쯤이면 다 먹고 자리를 옮기겠거니 싶었는데 무한리필이라며 한 시간 반 동안 고기를 굽고 있었다. 옷에 냄새 배는 게 정말 싫어서 나는 들어서자마자 애들한테 찡얼댔다. 오랜만이라 어색해서 나는 어색한 티를 츤츤, 냈다. 소정이한테 그동안 연락을 안 했던 게 미안해서 괜히 더 츤츤댔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어렸고, 나는 내 처지가 싫었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도 싫었다. 애들한테 앉자마자 했던 말이기도 한데,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나는 너무 ..
남자 주인공 때문에 속이 터졌지만 얼굴이 사이다여서 상쇄됐다. 여자 주인공은 예쁘고 캔디 같은 전형적인 일본 청춘물 여자 캐릭터였다. 다 좋은데 표정이 내내 애쓰는 표정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그 표정을 따라하게 돼서 힘들었다. 될듯 될듯 안 되다가 결국 둘이 만나는 그런 빤한 내용인데 의외로 지루하지 않았다. 남자 주인공이 잘생겨서 그렇다. 미생에 강대리님을 닮았다. 그런데 왜때문에 유부. 아니 왜때문에 쌍둥이 아빠. 영화는 나쁘지 않았는데 제목은 몇 번을 읽어도 나쁘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1도 와닿지 않는 제목이다.
한 주 만에 노랗던 나무가 앙상해졌고 수북하게 쌓여 있던 노란 잎들도 모두 사라졌다. 하나님 나라에 희망을 둔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요즘 듣고 있던 마커스의 찬양과 이번주 말씀이 겹쳐서 들렸다. 하나님 나라에 희망을 둔다는 건 이 땅에서의 삶은 너무 힘들지만 그곳에 가면 평안해 질 거라는 안일한 견딤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 희망을 둔다는 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이뤄지고 있으니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이 종종 이렇게 물밀듯한 깨달음으로 올 때가 있다.
* 다녀왔다. 이런 게 역사의 현장인 건가 싶었다. 중심도 아니고 변두리에 있었을 뿐인데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심은 뜨거웠겠지. 얘길 하면 좀 듣는 척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아니라고,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일을 한 게 아니라고 부인만 하지 말고 그럼 그 시간에 뭘 했는지를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걸 듣고 나면 모두가 너무 허망해질까봐 그게 두렵기도 하다.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하루빨리 마무리하고 내려와서 남은 당신의 삶을 알아서 살았으면 좋겠다. 함께한 소연찡이랑은 계속 먹고 계속 얘기했다. 다음주의 UE8 방문과 내년의 로미오와 줄리엣 관람도 약속했다. 소연찡은 내가 정말 언니 같아서 좋다고 했다. 나는 수줍어졌다.